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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하영 작성일26-02-19 22:09 조회1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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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혜화동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고급 주택가였다. 대학 교수들이 이 일대에 많이 살았던 것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일조했다. 당대의 철학자들이 혜화동에 살았다. 박종홍(朴鍾鴻·1903~1976), 최재희(崔載喜·1914~1984), 김태길(金泰吉·1920~2009)이 혜화동에 집이 있었다.서울대가 1975년 관악구로 옮겨가기 전에는 근처의 동숭동에 문리과대학이 자리 잡고 있던 것도 혜화동에 지식인들이 많이 산 이유의 하나였다. 박종홍은 ‘국민교육헌장’에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명제를 던졌다. 최재희는 칸트철학과 휴머니즘에 평생토록 골몰한 철학자였다. 김태길은 ‘언행일치’의 삶을 살지 않았나 싶다. 종로구는 이 세 철학자를 기념하여 혜화동에 ‘철학자의 길’을 조성한다고 들었다.필자는 1980년대에 대학 다닐 때 좋지도 않은 머리로 도대체 순수이성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끙끙거렸다. 교과서는 최재희 선생이 번역한 ‘순수이성비판’이었다. 이 책과 씨름하면서 밑줄을 긋곤 한 추억이 생생하다. 엊그제 그 자제분인 최완진(74·한국외대 명예교수)을 만나 아버지 책에 대해서 물어보았다.“지금도 나갑니다. 1972년에 박영사에서 ‘순수이성비판’을 처음 인쇄했는데 지금까지도 계속 찍는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처음에는 구색 갖추기로 출판했지만 50년 넘게 계속해서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술 서적으로 50년 넘게 절판 안 되고 계속 팔리는 책은 드물다고 하네요”. 1972년 당시 이 책을 번역할 때 서울대 철학과 조교는 이한구(81·학술원 회원)였다. 최재희가 번역한 이 책의 교정을 7번이나 봤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교정은 보통 1~2번 보는 데서 그친다. 7번은 그만큼 징그럽게 교정을 봤다는 이야기이다.제자들이 전하는 최재희의 공부 습관은 세숫대야였다. 삼복더위 때도 혜화동 집 2층 서재 책상에서 세숫대야의 찬물에 맨발을 담그고 책을 봤다고 한다. 에어컨이 없을 때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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